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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임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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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사아트센터
댓글 0건 조회 155회 작성일 25-06-10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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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임 개인전

전시명 이갑임 개인전
부주제 시간을 거닐다
전시장소 5F 제5전시장
전시기간 2025. 06. 18 - 2025. 06. 23
작가 이갑임
전시관 경남갤러리

전시회 설명

2018년 한 TV채널에서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방영했었다. TV정보에 둔감한 나는 드라마가 종영된지 한참을 지나서야 지인의 권유로 이 드라마를 보게 되었는데, 16부작이나 되는 분량을 단숨에 시청했었다.

TV ‘다시보기시스템에 무한한 고마움을 느끼면서 눈이 시뻘게지도록 밤을 새워 보고서는 아주 오랫동안 그 여운으로 멍하니 지냈었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가녀린 인간이 그것을 가까스로 지탱해가는 과정을 그린 <나의 아저씨>. 이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배경은 바로 골목이었다. 거기에는 그 인생이 걸어간 흔적이, 냄새가, 기운이, 메아리가 배여 있었다. 모두가 집으로 깃든 시각, 낮은 창틈 사이로 사람 도란거리는 소리가 꿈결처럼 들리고, 가파른 모퉁이 계단 틈 사이로 기어이 노오랗게 핀 민들레가 이따금 껌뻑거리는 방범등에 빛난다, 웃는다, 반긴다. 길과 길을 잇는 골목, 너와 내가 소통하는 이 골목을 지나야 비로소 서로 공감에 이른다. 골목은 온 것낱 것의 사이를 이어주는 신체의 핏줄과 같은 것이다. 어느 골짜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실개천이 되어 구비 구비 흐르다가 또 다른 실개천을 만나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듯, 집과 집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골목이 있어서 사람의 터가 형성된다. 크고 높은 것을 지향하는 세상의 그것도 작은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과대광고가 넘쳐나는 큰 길을 걷는 사람의 어깨와 등은 이 되고 이 되지만, 골목에서는 서로를 잇는 다리가 된다. “니가 왜 나를 왜 좋아하는지 알아?, 내가 불쌍해서 그래, 내가 불쌍하니까 너처럼 불쌍한 나를 끌어안고 우는 거야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극중 인물이 나누는 대화다. 그들은 우리가 그런 것처럼 정말 이지 치열하게 살아낸다. 그리고 골목의 민들레가 그런 것처럼 버티고 견뎌 피어낸다. 그들은(우리는) 골목 에서 엎어지면서 외로운 자신을 만나고, 다시 그 골목에서 일어서면서 대견한 자신을 만난다. 그리고 살아낼

이유를 깨닫는다.

이갑임 작가는 창원의 어느 변두리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 대도시가 된 지금도 그곳은 여전히 변두리이고, 그 골목의 정서를 지니고 있다. 예순을 코앞에 둔 그는 이른바 골방아카데미’(갖은 핑계로 외박에 성공한 그들은 친구의 작은 방에서 수다를 떨며 개똥철학에 입문했다) 출신이다. SNS로 소통하는 요즘은 그 정서를 이해하지 못할 테지만 그들의 사랑노래는 끝 간 데 없었고, 미래의 꿈은 비길 데 없이 아기자기하고, 뒷담화는 한없이 짜릿했었다. 그즈음 그들을 키운 건 바로 골방아카데미였다. 골목을 지나던 그들처럼 이갑임의 인생

에도 나이가 들면서 상처가 생기고 흉터가 남을 즈음, 어느 집 창으로 새어나오는 희미한 전등 빛이 따스웠고 그 소박한 평화가 부러웠다. 등 기댈 누구 없는 세상이 두려웠고 슬프고, 쓸쓸했다. 살아내야 했고 견뎌야 했으므로 그 골목을 작품으로 옮겨 스스로를 톺아야 했다.

그의 초기 작품은 형상이 해체된 자유분방하고 실험적인 양식을 띠고 있었다. 다양한 혼합재료를 매개로 섬세하면서도 삶의 의지가 강하게 느껴지는 비구상 작품이었다. 이때의 작품 주제도 그의 주된 관심사인 골목이었다. 거의 십수 년을 골목의 정서에 천착한 비구상 양식의 작품을 해오다가 삼사년 전부터 형상이 구체화된 골목을 표현하고 있다. 비구상 양식과 형상이 도드라진 양식, 그 사이에는 구체성이 존재한다.

여기에서 구체성이란 작품이 지니는 소통과 공감을 구체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구상에서 비구상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허다한 현실을 감안하면 독특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나는 여전히 비구상 양식의 작품에서 본 강렬한 메시지가 뇌리에 꽂혀 구상과 비구상의 두 양식을 한 화면에 존치시킬 수는 없을까 생각한다) 창원의 상상갤러리에서 처음 그의 작품을 보면서 나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떠올렸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또 오해영이라는 드라마를 집필한 박해영 작가와 미생이라는 드라마를 연출한 김원석 감독의 작품이다.

이갑임의 작품 골목<나의 아저씨>골목은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이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이갑임의 골목을 이해하는 열쇳말(키워드)에 가닿을 수 있지 않을까?

이둘의 골목에는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응원과 위로가, 스스로를 허물고 여는 감동이 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공감이 주는 감동은 거개가 골목에서 이루어진다. 뭇사람의 각하고 삭한 세상 인심에 수도 없이 당한 주인공은 다가오는 누구든 담을 쌓고 마음을 닫는다. “사람들은 네 번까지는 잘해주더라, 그러나 거기까지더라저 아저씨도 이쯤에서 끝나겠지 했으나 변함없는 배려를 보면서 그의 삶에 자신을 투영시키며 비로소 자신을 만난다. 집까지 바래다주는 아저씨와 마을 사람에게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순간 모두의 시공간은 멈춘다. 주인공이 쓸 수 있는 단어에서 아예 제외되었던 이 말은 그가 닫아둔 벽을 허물고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여는 순간이었다.

이갑임 작가의 작품 골목도 그러하다. 그가 표현한 골목에는 우리의 지난 시간과 기억이 오롯하다. 켜켜이 묻어둬서 잊었다고 여겼으나 사실은 시퍼렇게 살아 나의 삶에 개입하고 있는 그것은 세상에 치이고 엎어져 봐야 비로소 꺼내보게 되고 만나게 된다. 이 과정이 있어야 나와 세상은 서로를 바라보게 되고 비로소 알게 하여 화해하게 된다. 예술의 궁극적 소용은 무엇일까? 사람에게 예술이 필요한 까닭은 무엇일까? 주변에서는 쉬 얻을 수 없는 무엇을 예술을 통해 얻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은 무엇일까? 이갑임 작가의 골목은 치유의 시공간이다. 그의 작품에는 감동과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중략··· 골목 저 끝 아스라이 보이는 사람의 집들, 길을 밝히는 가로등,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 그 언덕 배기 담 아래 핀 민들레, 검푸른 하늘 저 편에 뜬 노오란 달은 지극히 평화롭다. 이처럼 이갑임 작가는 기억의 시간에서 희망을 길어 올리고 있다. 신인상파주의 작가 폴 시냐크(Paui Signac)가 항구에 쏟아지는 햇살을

점묘법으로 그리면서 희망을 담았듯, 이갑임 작가는 골목에서 만나는 풍경을 통해 희망을 말하고 있다.

이제 이갑임의 작품에 더 깊이 들어서보자. 거기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질 무렵까지 서성이던 를 만나자. 꼬옥 안아주면서 쓰다듬고 보듬어주며 애썼다칭찬해주자